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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낭만과 사색으로의 산책

지식과감성#

고일석 (지은이)

2022-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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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그것은 아주 오래전의 일이었다. 삐죽삐죽 덥수룩하게 자라난 머리카락을 다듬어볼 요량으로 마을 입구 버스정류장 건너편에 있던 이발소의 문턱을 넘어선 것이. 눅진한 페인트칠이 가뭄에 논바닥 갈라 터지듯 군데군데 벗겨진 대기의자 끝자리에 앉아 거울 앞에 놓여있는 이발의자로 옮겨 앉을 차례를 몸이 뒤틀릴 만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가 어느 계절의 어디쯤이었는지는 기억나진 않지만 끽끽 끄르륵 끅끅 음산한 신음소리를 연신 뱉어내는 낡은 선풍기 바람이 축축하게 배어났던 땀을 미지근하게 식혀주었던 것 같고, 검붉은 녹 뭉치가 마른버짐처럼 터져 나온 연탄난로 위에서 주둥이 찌그러진 누런 알루미늄 주전자가 수박 서리 들켜 이웃 마을 입구까지 한걸음에 달아난 사내아이의 호흡 같은 희뿌연 김 덩어리를 헉헉 가쁘게 뿜어내었던 것도 같다.
어쨌거나 그 자리에서 시간을 때워볼 요량으로 뒤적였던 표지 해어진 잡지책의 한 페이지에서 그것을 발견하였다. 살아간다는 건 정확한 시점이나 장소를 기억할 수 없는 무수한 순간들을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아무렇지 않게 흩뿌려두고 그것을 하나하나 헤아려가는 일과 같은 것이다. 어쨌든 나의 기억을 되짚어보면 분명 그날, 속 누런 종이에 검게 인쇄되어있던 ‘베네치아’란 네 글자에서 그것을 보았었다고, 분명 그랬었다고 머릿속을 불어가는 바람이 살랑살랑 말해주고 있다.

- 본문 <베네치아, 수필 같은 여행길> 중에서

베네치아에서 배는
때맞춰 물살 낮춰 흐르던
동네 입구의 개울물 같고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날의 오후에
혼자서 찾아 앉아 놀던 마을 뒷산의 그루터기 같다
베네치아의 배에서는
어릴 적 정 붙여 오래 키웠던
주글주글 늙은 누렁이의
낯익은 쉰내가 나는 것 같다

- 본문 <베네치아의 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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